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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과 조선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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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려 말 혼란스러운 시대적 배경과 개혁 세력의 등장

  • 원명 교체기의 혼란과 고려의 위기: 고려 말은 원나라가 쇠퇴하고 명나라가 새롭게 부상하는 격변의 시기였다. 명나라는 고려에 철령 이북의 땅(원나라가 점유했던 고려의 영토)을 다시 내놓으라고 요구하며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이는 고려 조정에 큰 위협이자 대외적 압박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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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문세족의 부패와 민심 이반: 내부적으로는 권문세족의 심각한 부패와 횡포가 만연하여 백성들의 고통이 극심했다. 특히 이인임과 같은 권문세족의 핵심 인물들은 사유 재산을 불법적으로 축적하고 백성들의 토지를 강탈하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불의를 저질렀다.  이러한 상황은 민심을 고려 왕실과 권문세족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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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흥 무인 세력과 신진 사대부의 성장: 외세 침략(왜구, 홍건적)에 맞서 활약하며 이성계, 최영 등 신흥 무인 세력이 성장했고, 정도전, 정몽주를 중심으로 부패한 고려를 개혁하고자 하는 신진 사대부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권문세족의 비리를 비판하고 새로운 사회를 꿈꿨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과 조선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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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성계와 정도전의 만남, 그리고 개혁의 불씨

  • 정도전의 현실 인식과 개혁 의지: 정도전은 백성들의 고통을 직접 목격하며 고려의 한계를 느끼고 '개혁을 넘어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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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몽주의 중개와 이성계의 발견: 정도전의 오랜 친구 정몽주는 답답함을 느끼는 정도전에게 이성계를 만나볼 것을 제안한다. 정도전은 함주로 이성계를 찾아가 그의 뛰어난 군사 지휘력과 강력한 군대에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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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계에게 혁명의 씨앗을 심다: 정도전은 이성계에게 "이런 군대로 무슨 일이든 못하시겠습니까?"라고 묻는데, 이는 '이 군대로 혁명을 일으켜 고려를 다시 살리거나, 더 나아가 새로운 세상을 꿈꿔보자'는 의미였다. 이 만남 이후 이성계는 개혁에 대한 의지를 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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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요동 정벌론과 위화도 회군

  • 요동 정벌 추진 배경: 명나라가 철령 이북의 땅을 요구하자, 우왕과 최영은 이를 명나라의 야심을 꺾고 옛 고려 영토를 되찾을 기회로 보고 요동 정벌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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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계의 '사불가론(四不可論)': 이성계는 요동 정벌에 강력히 반대하며 네 가지 이유를 들었다.
  1. 소국이 대국을 공격하는 것은 불가하다. 
  2. 농번기 여름철에 군대를 동원하는 것은 불가하다. 
  3. 군대가 북쪽으로 간 사이 남쪽의 왜구가 침략할 수 있다. 
  4. 장마철이라 무기가 손상되고 질병이 발생할 위험이 크다. 
  • 우왕과 최영의 강행: 우왕도 처음에는 이성계의 의견에 동의했지만, 최영의 강권으로 결국 요동 정벌을 명한다. 이성계는 왕명에 따라 천근만근의 발걸음으로 요동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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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화도에서의 결단: 압록강 위화도에 도착한 이성계의 군대는 폭우와 장마로 인해 강물이 불어나고 보급이 끊기는 등 심각한 어려움에 처했다. 군사들의 사기는 바닥에 떨어졌고, 도망병까지 발생했다. 이성계는 다시 최영에게 회군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결국 이성계는 깊은 고뇌 끝에 "내가 글을 올려 군사를 돌이킬 것을 청했으나 왕도 살피지 않고 최영도 내어 청순 이 혼란한 지 듣지 아니하였다. 우리 함께 왕을 찾아가 화가 되고 복이 되는 일이 뭔지 말해서 임금 측근인 악인의 제거해 편안한 삶을 살지 않게 됩니다."라며 회군을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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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화도 회군에 대한 다양한 시선:최영의 함정설: 요동 정벌이 이성계를 제거하기 위한 최영의 계략이었다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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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계의 예정된 계획설: 이성계가 이미 회군을 염두에 두고 치밀하게 계획했다는 주장도 있다. 동북면의 가별초가 개경으로 이동하여 6월 1일에 합류한 사실은 이성계의 사전 계획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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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회군 이후의 권력 투쟁과 새 왕조의 기틀 마련

  • 최영과 우왕의 몰락: 위화도 회군 소식에 개경 백성들은 이성계 군을 환영했으며, 이성계는 개경으로 돌아와 최영과 우왕을 제압했다. 최영은 죽음을 맞이하면서 "평생 탐욕이 있었다면 내 무덤에서 풀이 자랄 것이오 뭐 타격이 없었다면 풀이 자라지 않을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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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력 장악과 개혁 추진: 이성계는 우왕과 창왕을 폐위시키고 공양왕을 옹립하여 고려의 군사권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이후 정도전을 비롯한 신진 사대부들과 함께 권문세족에게 빼앗겼던 토지를 백성에게 돌려주고(과전법 시행),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들을 풀어주는 등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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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진 사대부의 분열: 급진파와 온건파: 개혁 과정에서 신진 사대부는 고려 왕조를 유지하며 개혁하려는 온건파(정몽주)와 고려를 넘어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급진파(정도전)로 나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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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몽주의 죽음: 이방원은 정몽주의 뜻이 확고함을 깨닫고 선죽교에서 그를 암살한다. 정몽주의 죽음은 온건파의 힘을 약화시키고 새 왕조 건국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5. 조선 건국

  • 새로운 왕조의 탄생: 정몽주의 제거 후, 이성계는 자신을 지지하는 신진 사대부들과 함께 1392년 음력 7월 공양왕을 폐위시키고 조선을 건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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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호 '조선'의 의미: '조선'이라는 국호는 고조선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로써 474년간 지속되었던 고려 왕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500년의 왕조, 조선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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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은 단순히 왕명을 거역한 사건을 넘어, 고려 말 권문세족의 부패와 명나라의 압박이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이성계가 신진 사대부와 결탁하여 고려 왕조를 뒤엎고 새로운 왕조 조선을 건국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이는 이성계의 군사적 능력과 정치적 결단, 그리고 정도전을 비롯한 신진 사대부의 개혁 의지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역사적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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